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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고갈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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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유협회: KPA Journal ‘석유와 에너지’ 2015년 봄호에 기고된 고기완 연구위원의 컬럼 ‘자원고갈론의 진실’을 소개합니다.

 

나무에서 석탄, 석탄에서 석유

석유는 바닥날까? 어리석은 질문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바닥이 난다”고 답한다. 지구가 구(球)이고, 그 속에 저장돼 있는 석유는 한정돼 있으므로. 이 생각은 옳을까? 이번엔 이렇게 물어보자. 석유는 언제쯤 고갈될까? 구체적인 연도를 말하긴 어려우니 우리는 “장래에”라고 대답할 수 있다. “태양이 꺼지는 70억 년 뒤엔 반드시 사라진다”고 답할 수도 있다. 70억 년 뒤라!
필자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석유는 고갈되지 않는다.” 내기를 걸 수도 있다. 내기 완료 시점은 사후(死後)가 될 것이지만, 이길 자신이 있다. 석유는 고갈되지 않는다는 근거가 있다. 인류는 이미 이유를 경험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나무 이야기를 해보자. 나무는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에너지로 쓸 수 있었다. 주변 삼림을 다 써버린 인류는 점점 멀리서 나무를 벌채해야 했다. 당연히 비용이 치솟았다. 1600년경 영국에서는 목재 가격이 너무 올라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할 정도였다. 나무 고갈론인 셈이었다.
인류는 나무를 대체할 에너지를 찾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였다. 석탄을 캐내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 노천 탄광에서 시작된 채굴 기술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석탄을 캐내는 데 이르렀다. 나무를 다 쓰기 전에 에너지원이 석탄으로 옮겨갔다. 웬만큼 사는 나라의 산하는 이제 나무 천지다. 인류의 기술본능 덕분이다. 대한민국 산하가 푸른 것도 이 같은 에너지원 변화 덕분이다.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는 도시는 없다.

그럼 석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나무의 길을 밟은 지 오래다. 인기를 끌었던 석탄 역시 이제 채굴비용이 높아 채산성이 떨어진다. 영국 등 유럽의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후 석탄을 이렇게 많이 쓰다간 석탄 고갈로 망한다고 우려했다. 당시 채굴기술로는 종말론이 맞을 지 모른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갑자기 석탄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석유가 석탄 자리를 대체했다. 현재 기술로 석탄을 무한정 캐낼 수 있지만 캐내지 않는다. 캐내봐야 손해이기 때문이다. 석유는 석탄에 비해 운반, 효율, 환경오염 등 여러 면에서 낫다. 물론 석유 채굴 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작용했다. 석탄은 고갈되기도 전에, 무진장 묻혀 있는 채로 최고 에너지원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석탄 매장량은 1975년 218년 분, 1999년 230년 분에서 현재 1500년 분이나 되지만.

 

써도 써도 늘어나는 석유

이제 석유 이야기를 해보자. 독자들은 이미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감을 잡았으리라. 석탄을 밀어 낸 석유 역시 나무, 석탄의 뒤를 따라 가는 중이다. 이렇게 쓰다간 석유가 금방 고갈될 것이라는 종말론도 예전과 똑같다. “중국이 산업화돼 석유를 쓰기 시작하면”, “아프리카 대륙이 석유를쓰기 시작하면”이라는 전제 역시 석탄 때와 동일하다. “전세계가 산업화돼 석탄을 쓰기 시작하면 어쩌나”와 같은 레퍼토리다.

 

 

석유 고갈론의 역사는 ‘양치기 소년’과 비슷하게 전개됐다. 1914년 미국 광산국은 10년 후 미국 석유 매장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하곤 우울증에 빠졌다. 25년 뒤인 1939년 미국 내무부는 13년간 사용할 석유만 남았다고 재차 발표했다. 광산국의 예측대로라면, 이미 고갈됐어야 했다. 20년 뒤 내무부는 또 다시 13년치 남았다고 했다. 1970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나서 “다음 10년이 끝날 쯤 우리는 전 세계의 확인된 석유 매장량을 모두 소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겁을 줬다. 석유 고갈론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도 줄기차게 나왔다.

하지만 세계 석유 확인매장량은 무슨 조화인지 계속 늘었다. 1970년 5500억 배럴, 1980년 6000억 배럴, 1990년 1조 배럴, 2013년 1조6450억 배럴로 증가했다. 석유를 더 많이 썼는데도 말이다. 석유의 시대에, 영국 빅토리아 시대 경제학자인 스탠리 제번스가 그의 책 ‘석탄의 문제’를 되돌아 보는 것은 흥미롭다. “석탄이 있으면 거의 모든 일이 가능해지거나 쉬워진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예전의 힘들고 궁핍한 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어느 경제학자가 석유에 대해 같은 말을 했다면, 늘어나는 매장량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항아리 크기도 모르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콩이 몇 알인지를 추측하려고 한다”는 구박을 들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석유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석유 고갈론이 인류를 극도로 위협하던 1970~1980년대에서 현재를 쳐다보면, 아이작 아시모프가 말했다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다.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면 가격은 당연히 천정부지로 올라야 정상이다. 희소성은 곧 가격이 아니던가? 석유가격 하락의 원인은 역시 인간의 지식과 기술발전에 있다. 과거에는 캐내기도 힘든 석유를 발견해내고, 끌어올린다. 3km 밑 셰일 암석층에서 셰일오일과 가스를 캐내는 기술은 미국을 세계 1위 산유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인근에서 2조 배럴의 셰일오일이 발견됐다고 한다. 미국은 중동 석유 의존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게 됐고, 에너지 가격은 미국 제조업의 재부활이라는 혁명을 불러오는 중이다.

 

섣부른 고갈론은 이제 그만

석유는 나무, 석탄처럼 다 쓰지 못한 채 다음 에너지에게 밀릴 것인가? 우리가 경험한대로 에너지가 경로의존성을 보인다면 그럴 가능성은 높다. 이제 우리가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석유는 고갈될 것인가?
우리는 인류다.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저자 매트 리들리는 “인류의 에너지원은 사람(노예)→동물→물→바람→화석연료로 바뀌어 왔다”고 했다. 화석연료를 넘어 원자력, 태양광,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할 시대가 멀지 않았다. 현재는 비효율적, 비경제적이지만 어느 날 인류의 지혜와 지식이 모아진다면 능히 미래 에너지는 만들어질 것이다.

 

 

자원이란 무엇일까? 자원은 자연에 있다고 해서 다 자원이 아니다. 자원이 가치가 있으려면 인간의 지성이 결합돼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원 자체가 아니라 그 자원이 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석유가 석탄보다 효율과 경제성이 뛰어나다면 그 반대인 석탄을 쓸 사람은 없다. 이렇게 되면 석탄은 인간지성(채굴 기술 등)과 결합되지 않아 더 이상 자원이 아니다. 사람이 써야 에너지다.
내기는 필자가 이길 것이다. 석유 확인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미래 에너지는 나올 것이다. 석유를 다 쓰지 못하고 인류는 다음 에너지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1980년 이런 내기가 있었다. ‘근본자원’의 저자 줄리안 사이먼과 종말론자인 폴 엘릭은 5개 금속(구리 크롬 니켈 주석 텅스텐)의 가격이 10년 뒤 “내린다”와 “오른다”에 각각 돈을 걸었다. 10년 뒤인 1990년 내기는 사이먼의 승리로 끝났다. 구리는 확인 매장량이 늘었을 뿐 아니라 광케이블등 대체재의 등장으로 비경제적 자원으로 전락해버렸다. 나머지 4개 금속도 마찬가지였다.
석유 고갈론은 근본자원인 인간의 한계돌파력을 잊은 데서 나온다. 인간은 지식, 기술발전 DNA를 가지고 있다. 70억 명의 인구 중 신기술을 창조해낼 확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다. 인구가 자원인 이유다. 인간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한 석유 고갈론과 석유 종말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은 백 번 지당하다. 하지만 섣부른 고갈론과 종말론은 곤란하다. 냉장고가 하나라면 음식은 곧 동이 날 테지만, 냉장고가 몇 개나 더 있는지 모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정책을 낳는 법이다. 이제 물로 가는 차가 나오고 있다. 인류를 믿으라.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 망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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