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크리스마스에 대처하는 솔로의 자세 “북덕유산 눈꽃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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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의 불청객, 크리스마스 이브

 때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습니다. 저는 여친 없는 솔로 상태였지요. ‘12월 24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야. 달력에도 빨갛게 표시되어 있지 않았어.’ 하루 종일 마법 같은 자기 최면을 걸고 혼자인 게 더 낫다는 지조를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나만의 특별한 날로 만들 거야!’

 “Roly~ Po~~ly♬, Roly Roly~~ Po~~ly 날 밀어내도 난 다시 네게로 다가가서~♬”(휴대폰 벨소리)

 그 날 따라 제 기분을 티아라가 알고 이브의 여자친구가 되어주려는지 전화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한 잔 하자는 술친구, 연휴인데 고향에 안 내려오냐는 부모님 전화 등…… 친구의 술 약속을 마다하고 마트에 갔습니다. 내일 떠날 산행 도시락을 준비하며 연말 연예대상 프로그램을 홀로 시청했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일기예보에 크리스마스 날은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될 것이라고 합니다. 밤은 깊어만 가는데 무엇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산에 간다면서 스키장에 온 이유는 뭘까?

 “아~ 5분만 더…… 5분만…… 제발”
 

 꿈 속에서 만난 공주님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이불에서 나오려고 하니 두 눈이 세상과 단절한 채 꼼짝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5분을 눈을 감은 채 불상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일어나지 못하면 빈 방에 홀로 남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크리스마스의 솔로가 되겠지?’ 벌떡 일어나 씻고 배낭을 챙겼습니다. 

 이른 새벽에 저의 산행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모두가 크리스마스에 할 일없이 집 나오신 분들입니다. 버스에 들어서자마자 모두들 이내 숙면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떠날 산행지는 덕유산입니다. 여기서 덕유산에 대하여 잠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산(1,614m)입니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있는데 설천봉(1,485m) – 향적봉(1,614,m) – 중봉 – 동엽령 – 무룡산(1,491m) – 삿갓봉 – 남덕유 (1,507m)의 해발 1,300m 안팎의 능선이 남서쪽을 향해 30여km에 걸쳐 뻗어 있는 대단히 큰 산입니다.

 

무주 덕유산 스키장!! 물론 저의 목적지가 여기는 아닙니다. C-:

 눈을 뜨니 스키장이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눈 덮인 무주리조트의 슬로프가 눈에 보입니다. ‘뭐야 여긴? 스키장이잖아!’ 그다지 아무런 감회가 나지 않았습니다. 잠 깨어 따뜻한 버스에서 첫 발을 디뎌 내렸을 때 느낌은 단지 이 심플한 표현이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헐 !!!’

 영하 12.6℃…… 칼 바람에 추위가 뼛속까지 시립니다. 우리 일행이 우람한 허벅지를 뽐내며 배낭을 둘러매고 걸을 때 주위의 여기저기서 스키와 보드를 꺼냅니다. ‘저도 스노우 보드 타고 싶어요!’

 

등산객, 하늘을 날다.

 곤돌라에 탑승하기 전, 각 조 조장들이 조원체크를 실시했습니다. 우리 조장은 얼굴은 곰돌이 인형 ‘푸우’ 닮았는데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합니다. 오늘따라 그의 포스가 남다릅니다. 우선, 아이젠과 배낭이 없습니다! 눈 산 정복에 앞서 대단하지 않은가요! 저는 그에게 ‘짱’이라는 의미의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려고 할 때 그는 미처 아침에 살림살이를 준비할 새가 없었다며 곤돌라에 가벼운 몸을 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곤돌라는 순식간에 설천봉을 향해 이동합니다. 제 두 발 아래로 겨울 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많은 등산객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릅니다.

 ‘이얏~호!!!’ 곤돌라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들은 금새 흰 갑옷을 둘러 입었으며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산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은하수를 연상시킵니다. 

 

추위와의 싸움 속 설원을 즐기다.

 곤돌라에 탑승한지 20여 분만에 설천봉(1,525m)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1,525m…… 거의 정상 수준의 높이입니다. 땀과 노력 없이, 힘들여 산에 오르는 과정을 무시한 채 설천봉에 도착했다는 것이 무미건조하게 여겨졌습니다. 

 

곤돌라에서 내리니 매서운 칼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그러나 이 느낌은 곤돌라 문이 열리기 전까지였습니다. 곤돌라 문이 열리는 순간, 영하 20℃, 체감기온 영하 35~40℃에 이르는 강풍을 동반한 강추위가 저를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감각이 없는 언 손을 가지고 극적으로 아이젠을 착용하였으며 털모자와 점퍼에 딸린 모자를 이중으로 착용하고 눈 부분을 제외한 모든 얼굴부분을 가렸습니다.

 칼 바람이 불 때마다 눈물이 났는데 안경에 묻은 눈물이 녹지 않아 안경을 벗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속눈썹 끝부분에 맺힌 눈물이 얼어 속눈썹에 얼음을 달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극히 추운 곳에 직접 찾아가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지금 현실이 크리스마스를 맞는 제 마음과 같았습니다.

 

파란 하늘이 너무나 예뻤습니다.

 하늘을 보았습니다. 하얀 구름은 역동적으로 푸른 하늘 속을 헤쳐 지나갑니다. 구름의 이동 속도가 매우 빨라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하늘의 인상은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제가 설국으로 초대받은 느낌이랄까? 새하얀 눈으로 뒤 덮인 덕유산은 마치 동화 속에 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습니다. 올 겨울, 처음으로 듣는 눈 밟히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아름다운 북덕유산의 설경!! 그리고 향적봉

 설천봉에서 20여분을 걸어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에 다다랐습니다. 너무 쉽게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손이 너무 시려워 인물을 동반한 인증샷 없이 비석만 찍어두었습니다. 온 몸이 냉동상태가 되어갈 무렵 덕유산 능선에서 세차게 부는 칼 바람이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구상나무와 주목 군락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년…… 도합 삼천 년을 이어간다는 주목나무 군락지가 나타났습니다. 

 

이 나무에는 도대체 어떠한 애틋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덕유산 곳곳에는 겨울설경이 이 나무들과 어우러져 겨울 최대의 비경 상고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덕유산 능선을 걷다.

 쭉쭉 뻗은 덕유산 능선 저 멀리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저를 부릅니다. 저는 세찬 바람을 무릅쓰고 하이디를 향하여 능선 길을 헤쳐나갑니다. 눈보라에 눈뜨기가 힘들고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지만 끝없이 펼쳐진 덕유산 능선자락을 보고 있으니 크리스마스라는 터울에 갇혀있었던 마음이 펑 뚫리는 느낌입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덕유산 능선

 

예기치 못한 점심식사 사건

 강추위 속 지속된 산행은 체력 소모와 체온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사방천지 눈꽃들이 단지 쫄깃쫄깃한 닭발(?)로 보이려고 할 즈음, 드디어 우리의 ‘푸우’닮은 조장은 식사시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밥을 먹지? 하는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모두의 배낭에서 도시락이 나오는데 임금님 수라상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도시락이었고요. 이제부터 사건이 발생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요 C-:

 저도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개봉하는 순간, 아뿔싸!!! 볶음밥이 얼었습니다! 올해 첫 겨울산행이라서 그런지 미처 보온밥통에 밥을 담아온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반찬은? 역시 얼었습니다. 그럼 물은? 물도 얼었고요. 옆에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온 조원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볶은 볶음밥이 아깝게 여겨져서 인지 그에게 뜨거운 물을 동냥해 언 볶음밥에 말아 먹고야 말았죠.

 

낙엽이 무성한 하산 길을 걷다.

 동엽령에서 남쪽, 동쪽, 서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타났습니다. 병곡리로 내려가는 동쪽 길을 택하였습니다.
하산 내내 낙엽이 무성한 길을 걸었습니다. 눈이 녹아 촉촉하게 젖은 겨울낙엽은 밟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녹을 정도로 날씨는 따뜻해졌기에 이 곳이 고지대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 다리가 사르르 녹아 다리힘줄이 풀릴 무렵, 저는 물기 뭍은 낙엽이 쌓인 경사진 하산 길에 수 차례 꽈당 넘어졌습니다. 아이고!!!

 

겨울산을 내려올 때는 넘어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꽝꽝 얼은 겨울계곡 틈새로 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히 납니다. 계곡을 지나니 추수가 끝난 논밭과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내 이어진 흙 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길이 시작되는 곳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상, 크리스마스에 얽힌 재미있는 저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때의 크리스마스는 제 생애 최고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답니다. 여러분께서 만약 애인이 없는 솔로이거나 크리스마스에 딱히 특별한 약속이 없으시다면, 한번쯤은 크리스마스에 집착하는 연애문화에서 벗어나 가슴 뻥 뚫리는 광활한 북덕유산 능선에서 맞이하는 눈꽃산행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북덕유산 산행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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